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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를 맞이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소통이 부족하다, 내가 늘 하나가 되자고 얘기를 하지만 이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회의를 시작하며 뱡이 그럴듯하게 포장한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이번엔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저러나 모두들 궁금해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금세 본색이 드러났다.
"내가 일주일이나 입원을 하고 수술까지 했는데, 아무도 괜찮으시냐고 묻거나 수술 잘 받고 오시라거나 하는 안부 문자도 한 통이 없더군요."
속으로 피식 웃으며 킨은 다른 직원들을 살폈다. 마스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다들 어이없는 표정인 것을 눈빛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 참고로 얘기하자면 이 조직은 여전히 회의가 있거나 외부에서 손님이 올 때 마스크를 쓴다. 코로나19가 독감과 같은 4등급으로 조정된 지가 한참 지났지만, 대표인 뱡이 여전히 민감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죽는 게 죽기보다 싫은가 봐요."
이제는 어떤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는 코로나19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열심히 조사해서 매번 회의 때마다 직원들에게 이야기하는 뱡을 비꼬며 누군가 말했었다.
뱡은 당뇨병을 앓고 있다. 최근의 입원도 당뇨합병증으로 눈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하는 김에 백내장 수술도 같이 했다.'라고 본인이 직접 밝혔다. 킨은 이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 안과 의사들이 시력 개선을 핑계로 과도한 백내장 수술을 권유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는 보도를 떠올렸다. 죽는 게 죽기보다 싫은 뱡은 의사의 권유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굴복했을 거라고 킨은 생각했다. 종량제 쓰레기봉투 한 장 살 돈도 아까운 사람이니 한 번에 해치우고 수술비와 입원비도 아끼라는 유혹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겠지.
"어떻게 대표가 입원을 했는데 직원들이 연락 한 번을 안 할 수가 있나요? 이래서야 우리가 원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실망입니다."
직원들도 뱡에 대해 정말 실망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비밀이 많은 뱡은 언제 출근하는지, 오늘 출근을 하기는 하는지부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툭하면 무단 결근하고 나중에서야 연차로 처리하곤 했다. 물론 이번 휴가는 꼬박 일주일의 긴 휴가여서 부장에게는 미리 말을 해두었던 모양이지만, 직원들에게는 미리 말하지 말라고 본인이 신신당부를 했기에 직원들은 금요일 퇴근 즈음에서야 다음 주에 대표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정이 이러니 대표가 해외여행을 갔는지, 입원을 했는지, 죽었는지 직원들은 알 방법이 없었고 물론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슐린 자가 주사를 맞을 정도로 심각한 당뇨병 환자라고 하기에는 평소에도 케이크, 도넛, 라면 같은 음식을 '햐, 이거 먹으면 안 되는데...'라면서 너무나 잘 먹어대는 뱡이었기에 직원들은 모두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을 뿐 수술하게 되어 딱하다거나 안쓰럽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딱 한 사람, 뱡의 연설을 들으며 안절부절 못 하는 사람이 있긴 했다. 부장인 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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